Christie Golden. The Shattering: Prelude to Cataclysm. New York: Gallery Books, 2010.

 

「프롤로그」

 빗방울이 조그만 오두막 위로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가죽을 내리치는 소리는 마치 재빠른 손놀림으로 북을 두드리는 소리와 같았다. 오크의 오두막들이 으레 그렇듯 꽤나 튼튼하게 만들어진 터라 빗물은 전혀 새지 않았다. 그러나 습한 한기가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윽고 비는 눈으로 변했지만, 어찌되었든 눅눅하고 싸늘한 공기가 드렉타르의 노쇠한 뼈 속으로 침투해 들어와 그의 육신을 밤새 긴장케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이 연로한 주술사의 잠자리를 뒤척이게 만드는 것은 추위가 아니었다.

꿈이다.

예전부터 드렉타르는 예언이 담긴 꿈을 꾸거나 환영을 보곤 했다. 이 영적인 시야는 더 이상 육안으론 앞을 보지 못하게 된 그에게 주어진 능력이었다. 하지만 악몽전쟁[각주:1] 이후 그 능력은 거칠어져만 갔다. 그의 꿈은 그 끔찍한 사건을 지내는 동안 더욱 악화되었고, 잠은 더 이상 안녕과 재충전이 아닌 공포를 약속했다. 그 꿈들은 그를 늙게 하고, 비록 나이 들었지만 강력했던 그를 허약하게 만들었으며, 때때로 불평을 늘어놓는 늙은이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악몽의 군주가 패배했을 때 그의 꿈이 정상으로 돌아오길 희망했다. 하지만 그 강도가 약해지는 와중에도 그의 꿈은 몹시, 몹시도 어두웠다.

꿈속에서, 드렉타르는 볼 수 있었다. 그는 차라리 꿈속에서 눈이 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산 위에 홀로 서있다. 평소보다 가까이 떠있는 태양은 흉측하게 부푼 모습으로 산기슭을 향해 물결치고 있는 바다에 엷은 핏빛을 드리운다. 무언가가 들린다…….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굵직한 굉음이다. 살갗이 욱신거릴 만큼 거북하다. 평생 들어본 일이 없는 소리지만 정령들과의 단단한 결속 덕분에 어떤 끔찍하디 끔찍한 암시를 직감한다.

잠시 후 바닷물이 밀려나갔다가 또 다시 산기슭을 향해 세차게 들이닥친다. 마치 굶주린 파도 아래 어둡고 흉측한 무언가가 꿈틀대는 양, 파고는 높아만 간다. 산 위에 서있는 드렉타르조차 위태로움을 느낀다. 아니, 이제 더 이상 그 무엇도 안전할 수 없다. 맨발로 딛고 있는 땅이 흔들린다. 마치 그의 지팡이가 사납게 놀치는 대양과 무너지는 산으로부터 지켜줄 것인 양 옹이투성이의 막대기를 감싸 쥐어보지만, 손가락은 고통스럽게 뒤틀린다.

그러고 나서, 일말의 경고도 없이, 일이 터진 것이다.

드렉타르의 발밑으로 갈 지 자 모양의 균열이 생긴다. 균열은 마치 그를 집어삼키려는 아가리인 마냥 벌어지는데, 한 발은 들고 한 발은 빠진 채 울부짖는 그는 손에 쥔 지팡이를 놓쳤고, 그것은 깊은 구렁 속으로 떨어진다. 바람이 그를 할퀴자, 튀어나온 바위의 귀퉁이를 잡고 버티는데, 대지가 진동하자 그도 따라 떨며, 한참동안 감겨있던 눈으로 아래쪽에서 핏빛으로 끓어오르는 바다를 응시한다.

 거대한 파도가 몹시 가파른 절벽을 향해 부서지며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이 띄워 올린 물보라가 드렉타르에게까지 닿았다. 겁을 집어먹은 정령들이 사방에서 울부짖으며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구한다. 굉음은 커져만 가고, 질겁한 그의 눈앞에 거대한 규모의 토사가 붉은 바다의 표면을 이지러뜨리는데, 머무름없이 치솟고 또 치솟더니, 스스로가 산이 되고, 대륙이 된다. 급기야는 드렉타르가 딛고 선 땅이 다시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가 균열 속으로 떨어진다, 고함치고 허공에 팔을 내두르며 불구성이 속으로 떨어진다―

 드렉타르는 가죽 이불을 덮은 그대로 벌떡 일어났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땀으로 축축해진 그의 몸은 전율하고 있었고, 손으론 허공을 움켜잡고 있었으며, 다시 앞을 볼 수 없게 된 눈을 동그랗게 떠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지는 흐느끼리라, 그리고 세상은 산산조각나리라!” 드렉타르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무언가가 그의 도리깨질하는 양손을 모으고 달랬다. 익숙한 촉감이었다. 수년 동안 그의 곁에서 시중들고 있는 팔카르였다.

 “진정하세요, 대부 드렉타르님이시여. 그저 꿈일 뿐입니다.” 젊은 오크가 잔소리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호드 내에서 드렉타르의 말은 가벼이 흘려들을 수 없을만한 권위를 가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터랙 산맥의 전장을 지휘했을 만큼 무력도 갖췄던 그였다. 지금은 비록 늙고 허약해졌지만, 그의 주술은 여전히 강력하다. 따라서 그가 목격한 환영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팔카르, 난 스랄을 만나야만 해. 그리고 대지 고리회도.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내가 본 걸 봤겠지만……. 못 봤다면 내가 알려야 해! 내가!” 드렉타르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 한 쪽이 고꾸라졌다. 낙심한 그는 말을 듣지 않는 노구를 두들길 뿐이었다.

 “대부님, 지금은 일단 주무셔야 합니다.” 확실히 드렉타르는 자신을 가죽 이불 밑으로 쉴 새 없이 밀어 넣는 팔카르의 힘을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지쳐있었다.

 “스랄은…… 알고 있겠지.”  드렉타르는 팔카르의 팔을 맥없이 쳐내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내일 일어나서 같이 스랄님을 만나러 가요. 하지만 지금은 …… 쉬세요.”

 꿈을 꾸느라 지친데다 한기 때문에 뼛속이 시렸던 드렉타르는 고개를 끄덕였고, 팔카르는 따뜻한 것이 몸에 들어가면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뜨거운 엽차를 준비했다. 드렉타르는  ‘팔카르는 좋은 아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그의 마음은 또 다시 엉뚱한 곳을 떠돌고 있었다. 팔카르가 내일이라도 늦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차를 다 마신 드렉타르는 머리를 뉘었다. 그리고 잠에 들기 전에 불안하게 자문했다. 뭐가 늦지 않다는 거야?

팔카르와 드렉타르.



 * * *

 팔카르는 등을 기대고 앉아 한숨을 쉬었다. 비록 세월의 무게 앞에 드렉타르의 육신이 점점 허약해질지라도 그의 정신만은 마치 비수처럼 날카로웠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팔카르는 그의 환영을 전해 듣자마자 스랄에게 부리나케 뛰어가곤 했다.

 이젠 아니다.

 굉장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지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지혜를 가졌던 그 날카로운 정신은 지난 한 해 동안 투미해져갔다. 한때 기록보다 정확했던 드렉타르의 기억은 부정확해지기 시작했다. 기억 간에 모순이 생긴 것이다. 악몽전쟁과 시대의 참화를 겪은 까닭에 그의 환영이 고작 악몽 따위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팔카르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팔카르는 몸을 일으켜 잠자리로 다가가며, 두 달 전 드렉타르가 일단의 오크들이 평화롭게 모여 사는 타우렌과 칼도레이[각주:2] 드루이드들을 학살하러 간다며 전령을 보내야한다고 고집을 피웠던 일을 고통스럽게 떠올렸다. 실제로 전령에게 경고문을 쥐어줘서 보냈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늙은이의 말을 들어서 잘 된게 딱 하나 있는데,  나이트 엘프들의 의심이 늘었다는 거였다. 거기엔 오크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드렉타르는 곧 위험이 닥칠 거라며 아득바득 우기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자잘한 환영들을 많이 봤는데, 하나같이 허황됐다. 실제로 위협이 닥쳐오고 있다면, 드렉타르 말고도 다른 이들이 반드시 감지했을 것이다. 팔카르 스스로도 비록 미숙한 주술사였지만, 그 어떤 기미도 느끼지 못했다.

 약속을 지키긴 할 것이다. 드렉타르가 다음날 일어나 스랄을 보길 원한다면, 한 때 그의 제자였으며 호드의 대족장인 그를, 역시 호드 창설에 기여했던 드렉타르가 만나길 원한다면, 아침이 밝는 대로 스승과 떠날 채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혹은 전령을 보내 스랄이 이쪽으로 오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길고 지루한 여행이 될 게다. 스랄은 오그리마에 있고 드렉타르는 알터랙에 있으니, 대해를 건너야 한다. 드렉타르는 굳이 이곳에 남아야 한다며 어깃장을 부렸었다. 하지만 팔카르는 그런 고생을 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내일이 오면 드렉타르는, 꿈의 내용이 뭔지는 커녕, 꿈을 꿨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테니까.

 흔하게 벌어지던 일이었다. 그리고 팔카르는 도통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드렉타르의 노망이 심해질수록 팔카르는 더 괴로워질 뿐이었다. 드렉타르가 곧 산산조각날 거라 철썩 같이 믿는 그 세상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충동이 맹렬하게 일었다. 이 늙은 오크는, 그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세상은 이미 산산조각났다는 걸, 조금도 알지 못했다.

팔카르는 지금과 다른 과거와 드렉타르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다. 실로, 드렉타르의 삶은 길기도 했지만 영예로 가득한 인생이었다. 오크는 불행과 직면했을 때 그것과 싸우며 분노해야 할 상황이 있는가 하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할 경우가 있다는 걸 이해한다. 팔카르는 조그만 꼬마였던 시절부터 드렉타르를 모셔왔고, 이 늙은 오크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봉양할 것을 맹세했었다. 스승이 천천히 영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 쓰라릴지언정.

팔카르는, 가죽 이불로 그의 장골을 덮으며, 등을 기대고 누워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촛불을 비벼 껐다. 바깥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팽팽히 잡아당겨진 가죽을 북처럼 쉼 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1. War against the Nightmare. 리치 왕이 몰락한 직후, 에메랄드의 꿈을 악몽으로 변질시키려는 악몽의 군주와 그것을 정화하려는 드루이드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 말퓨리온의 활약으로 악몽의 군주는 패배하게 된다. [본문으로]
  2. 나이트 엘프. 칼도레이는 다르나서스어(Darnassian)로 “별의 아이들”이란 뜻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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